[단편] Moderato 上

 


  천재는 외롭다고들 한다. 내가 만난 그 아이도 항상 외로워 보이고 고독을 즐기는 녀석이었다. 녀석의 말로는 자신이 그렇게 만들고 싶어서 그런 것은 아니라고 한다. 주어진 환경이나 상황이 외롭게 보여 지는 것이 자신은 슬플 뿐이라고. 그렇지만 자신은 외롭지 않다고. 고독과는 친구라고... 하지만 이제는 아니라고 대답할 수 있다고. 자신의 삶 중심은 누군가로 인해 돌아가기 시작했다고.

 

 


Moderato 上

정윤호X김재중
Written by_Sakurei

 

 

 

 
모데라토 [moderato]
:음악에서 ‘보통빠르기’를 지시하는 빠르기말.
 ‘적당한’ ‘온건한’의 뜻

 

 


“야야야!! 이번 가을 정기 연주회 일정 잡힌 거 들었어?!”
“항상 이맘때면 하는 행산데 새삼스럽게 호들갑 떨고 그러냐? 아- 이번엔 무대나 설 수 있을까? 작년 겨울 연주회 이후로 나가 본 적이 없어.”
“그게 문제가 아니야! 완전 대박이라고!”
“뭔데? 뭐가 그렇게 대박인건데?”
“왜 그 있잖아! 관현악에 천재라고 불리는 예쁘장하게 생긴 얘! 걔 나온데.”
“야.. 넌 이름도 제대로 모르고 대박이라고 하고 말을 하냐? 김재중 아냐! 올 연주회 대박이겠다. 엔딩이 걔겠네.”


  가을이면 항상 찾아오는 정기 연주회로 음악과의 모든 클래스가 시끌시끌하다. 클래스메이트들이 올해도 그냥 지원하지 않을거냐는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딱히 연주회에 나가야 된다는 생각 자체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선생님이 한번쯤은 나가봐야 되지 않겠냐는 질문을 해왔던 적도 있었지만. 고등학교 졸업장이라는 종이 하나만 들고 돌아가면 되기 때문에 미련 따위 없었다. 학교 같은 거 안다녀도 되는데... 중졸인 자식은 두지 않겠다고, 졸업장을 가지고 오지 않는다면 나에게 돈줄을 끊어버리겠다는 엄포를 내려놓으신 아버지 덕분에 꼴에 할 줄 아는 것이라곤 피아노 하나라 예고로 진학을 했지만 역시 재미가 있지만은 않다. 이리저리 관현악부 아이들이 기악부로 올 것 생각하면 머리가 아프다. 관현악부 아이들만으로 북적거리는 교실이 더 시끄러워질 거니까.


“야 정군! 너 진짜 이번에도 안 나가?!”
“어. 빡유 넌 올해도 돌고래 놈이랑 하냐?”
“아니. 이번에 나 솔로 지원했는데?”
“에?”
“준수가 빡빡 우겨서 어쩔 수 없었어.”


  좋다고 웃는 유천의 모습에 웃음이 터졌다. 준수의 말이라면 그리도 좋을까? 녀석의 머리를 한번 흐트러뜨려 주고는 책상에 나른하게 엎드렸다. 빨리 이 시끄러운 시기가 지나갔으면 싶어서. 내가 학기 중에 가장 좋아하는 때는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이렇게 시끄럽고 머리 아픈 상황, 정기 연주회나 축제기간 이 세상에서 가장 싫다. 앓는 소리를 내며 끙끙대자 유천이는 내 머리를 한번 세게 내려치고는 교실을 빠져나갔다. 쫓아가서 응징을 해 주어야 하지만, 딱히 그럴만한 힘이 없어 고개를 들어 유천이 빠져나간 그 문 사이를 쳐다보고 있었다. 역시나 오늘 정기회 때문인 것인지 관현악부 아이들이 많이 기웃거리고 있다. 딱히 나에게 함께하자고 부탁해 올 사람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자리에서 일어나 반을 빠져나왔다. 왠지 오늘 수업은 한번 까줘야 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정처 없이 발걸음이 가는대로 옮겨왔을 뿐인데, 결국 도착한 곳은 인적이 드문 교실 안의 피아노 앞이었다. 어째 도피처가 여기 밖에 없는 것인가 하는 느낌에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손을 뻗어 건반을 하나 둘 누르다 의자에 앉았다.


“Debussy의 Claire de Lune이네. 방해 할 생각은 없었어.”
“......”
“기분이 나빴다면 미안. 몰래 들으려고 한건 아니었어. 옆방에서 자고 있는데 피아노 소리가 들려 이끌려 왔을 뿐이야.”
“넌 왜 여기에...”
“아.. 도망 왔어.”
“유명인은 다르네.”


  생각지도 않았는데 내 입에선 그리 좋지 않은 말이 내뱉어졌다. 딱히 억한 감정이 실린 것도 아니었는데. 내가 말하고도 놀랐지만 표정으로 드러내지는 않았다. 녀석은 나를 빤히 한번 쳐다보더니 잔잔한 목소리로 나긋하게 말을 이었다. 다른 곡도 쳐 줄 수 있느냐고. 나는 녀석을 한번 쳐다보고는 내 옆자리를 탁탁 쳤다. 그러자 녀석은 팔랑거리며 내 옆에 앉았고, 딱히 생각나는 곡은 없고 해서 이루마의 River flows in you를 조심스럽게 연주를 했다. 클래식을 쳤어도 됐겠지만, 딱히 틀에 박힌 클래식을 치고 싶진 않았기 때문이었다. 피아노 건반을 누르며 옆을 한 번씩 바라보았다. 까만 머리통이 고개를 까딱이며 음을 타고 있었다. 타고난 천재 형은 아니기 때문에 내 피아노 연주에 한 번도 자부심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오늘은 왠지 내가 엄청 잘 치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음 힘은 있는데, 감각이 조금 떨어지구나. 좋아.”
“......”
“이미 내 이름은 알고 있을 테지만. 난 김재중이야. 넌?”
“정윤호”
“나 네 피아노 마음에 들었어. 나랑 이번 연주회 같이 나가 줄래?”
“..........”
“왜 싫어?”
“.....어.”
“왜?”
“.....귀찮은건 딱 질색이니까. 너의 부탁이라는 것도.”
“............내가 그렇게 미워?”


  녀석의 부탁이 그렇게 싫지만은 않았다. 다만 녀석은 우리학교 유명인사이고, 난 하찮고 보잘 것 없는 부잣집 도련님밖에 안 된다는 것. 녀석으로 인해 받게 될 시선과 관심은 귀찮은 일이 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미워서 그런 말을 한 것은 아닌데. 오해는 풀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네가 싫어서가 아니라 너로 인해 일어날 많은 일들이 싫어서라는 것을. 내 말을 귀 기울여 듣고는 재중은 심각한 표정을 한번 짓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나를 이해 한다는 얼굴로 베실 웃는 모습에 나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작게 운동하고 있던 심장이 갑자기 과민반응을 했기 때문이었다. 두근거리는 심장소리가 녀석에게 들릴까봐 겁이 났다. 갑자기 왜 이래.


“아~ 아쉽다. 너랑 하고 싶단 생각이 딱 들었는데.”
“.....”
“그럼. 발표하기 전까지 너랑 나 둘이서 하는 거 비밀로 하는 건 어때?”
“내일까지 지원서 제출...”
“그건 걱정 마. 내가 선생님께 잘 말씀드릴게. 믿을 만한 선생님이 한분 계셔.”
“... 그래도.”
“윤호야 내가 미운 건 정말 아니지?”
“어?.. 어.”
“그럼 됐어. 비밀로 해야 하니까. 매일 수업 끝나고 학교 앞 편의점 앞에서 만나기다!”
“어? 어디서 할 건데?”
“음... 피아노 있는 데를 찾아봐야 하는데. 예전 학원 선생님께 여쭤볼까?”


  고개를 갸웃 거리며 다리를 앞뒤로 흔드는 녀석의 모습에 미간을 찌푸렸다. 현기증이 날 것만 같았다. 오늘 처음 보는 것도 아니고, 입학 할 때부터 이미 천재로 이름을 날렸던 그때도 이렇지 않았는데. 딱히 답이 나오지 않는 볼을 살짝 부풀렸다 풀어내고는 나를 눈을 치켜뜨며 바라보았다. 헛기침을 하며 창밖으로 시선을 옮겼다 다시 녀석을 바라보았다. 뭔가 나에게 답을 원한다는 눈치였다. 딱히 나도 어디를 가야 할.... 아! 우리 집에 피아노 있는데 왜 굳이 다른 곳을 찾으려고 한 것일까? 병신...


“우리 집. 우리 집은 어때?”
“부모님은?”
“없어.”
“응?! 없어?”
“어. 나 혼자 살아.”
“우와 진짜?! 아 완전 좋다. 윤호야 우리 진짜 같이 해도 되는 거지?”
“..... 어.”


  꼭 하는 행동이 몇 년을 같이 지내온 친구처럼 행동 한다. 이봐 김재중씨 너랑 나 지금 만난 지 30분도 안 지났거든요?! 근데 싫지 않은 이 감정은 아무래도... 모르겠다. 귀차니즘의 대가인 정윤호가 귀찮은 일을 하겠다고 동의한 일 부터가 지금 신기한 일인데. 잘 한 것인지 못한 것인지 모르겠다. 이런 저런 생각으로 머리를 대굴대굴 굴리고 있는 사이 녀석은 피아노 위에 올려 두었던 내 핸드폰을 발견했는지 손가락을 꼬물꼬물 움직여 제 번호를 입력하고는 통화 버튼을 눌렀다. 핸드폰에 비밀번호가 걸려있진 않았기에 녀석은 쉽게 내 번호를 땄고, 나 역시 재중의 번가 내 핸드폰의 통화기록에 남았다.


“헤에- 문자 잘 보내?”
“....아니.”
“음 나는 엄청 좋아하는데.”
“잘 못써.”
“에?! 진짜? 너 완전 기계치지?!”
“.......”
“정곡을 찌른 거야?”


  꺄르르 웃는 녀석의 모습을 처음 보았다. 항상 무표정한 얼굴로 얼음장 같은 모습이었는데. 한 번씩 클래스메이트들이 얼음공주라고 부르는 것도 들어 본 적이 있던 것 같다. 지금 내가 보는 이 녀석은 몰랑, 몰랑 달콤한 쉬폰 같은 느낌이다. 깨물어 먹으면 너무 달아서 소름이 끼칠 것만 같았다. 저렇게 웃기도 하는 구나. 그것도 나로 인해 웃는다는 생각을 하니 내가 다 달아서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웃지 말라며 녀석의 볼을 손으로 붙잡았다. 왠지 뜯어질 것만 같은 볼이 여서. 혹시 내가 쭈욱 잡아당기면 똑 떨어지지 않을까 싶어서. 일그러진 발음으로 하지 말라며 버둥거리는 녀석이었지만 뭐가 즐거운지 나는 녀석을 붙잡은 손을 놓지 않았다. 새하얗던 얼굴이 빨갛게 달아 오른 것을 인지하고서야 손을 놓았다.


“아우우.. 아파. 정윤호!!”
“그렇게 말고.. 다르게 불러줘.”
“응? 내가 널...”
“......”
“.....윤호야..?”
“그게 좋다. 성 붙이지 마라 넌.”
“이게 좋았어? 헤에- 그건 그렇고 우리 둘이 한다는 거 선생님께 허락이나 받으러 가자.”
“너 나 괜찮겠어? 선생님들이...”
“쉿! 괜찮아. 나만 믿어.”


  뭘 믿으라는 건진 모르겠지만. 믿으라니까 한번 믿어 보도록 해야겠지. 재중이 내 손목을 잡고 나를 질질 끌고 나섰다. 어디로 데리고 가는 건지, 어떤 선생님인 건지 가는 동안 계속 물어 보았지만 녀석은 그저 웃기만 했다. 그렇게 예쁘게 웃어주면 내가 안 물을 것 같아?! 안 물어봤다. 정말 녀석이 도착했다고 말을 하기 전까지는. 딱히 들어 올 일이 없기도 했고, 들어 올 일도 없었던 이사장실 앞이었다. 이사장실이라 적힌 팻말을 보고 녀석을 한번 보고 다시 한 번 문을 바라보았다. 가볍게 코웃음 치며 녀석은 문을 두드렸다. 나무에서 울리는 소리가 발랄하게 들렸다면 지금 내 텐션이 아주 높은 상태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네.”
“여기서 어쩌려구?!”
“기다려봐. 이사장님?! 들어가도 될까요?”
-“네 들어오세요.”


  녀석이 가볍게 문을 돌려 이사장실 안으로 들어갔고, 난 녀석의 손에 이끌려 이사장실에 들어 갈 수밖에 없었다. 중학생 때는 아버지와 함께 자주 들어갔었던 이사장실이지만, 현재는 조용히 학교를 다니고 있기에 이사장실에 들어 올 일이 없었다. 이사장실 안을 눈을 돌려가며 구경하던 찰나에 눈앞에 보이는 이사장님의 모습에 어이없는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이사장하면 딱 드는 생각이 흰 머리에 구부정한 허리에, 노인네 풀풀 나는 할아버지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내 눈앞에 서있는 이사장님은 엄청 젊으신 분이시다. 그런 내 모습을 이해라도 한다는 듯 나와 재중을 소파에 앉으라고 했다.


“재중이 오랜만에 들렀네? 옆에는 친구? 처음 보는데. 이름이 뭐죠?”
“아.. 전 피아노 전공 정윤호라고 합니다.”
“반가워요. 전 심창민이에요.”
“이사장님. 저 부탁이 있어요.”
“불러도 잘 안 오는 재중이가 나한테 친히 할 말이 있어서 오셨구나. 둘 다 오렌지 주스면 되겠죠?”
“네?! 네!!”


  이사장님이 비꼬듯 재중에게 말하고 있지만 온화한 미소와 함께 장난끼 어린 표정이었다. 엄청 젊은 나이에 이사장이라니. 대단하신 분 인거 같기도 하고... 근데 어떻게 재중이랑 알고 있는 걸까? 단순히 재중이가 천재이기 때문인 것인가? 그리고 항상 교내 행사가 있어도 보이지 않던 이사장님이 이렇게 젊었기 때문에 보이지 않았던 것인가? 솔직히 우리 학교 교복 입고 있으면 같은 또래라고 해도 믿을 만큼의 외모에, 깔끔하게 차려 입은 수트가 남자인 나마저 설레이게 만들었다. 오렌지 주스를 나와 재중의 앞에 두고, 이사장님은 원두커피 잔을 자신의 앞에 두었다.


“자, 무슨 부탁으로 저를 찾아 오셨나요?”
“이번 정기 연주회 때, 윤호랑 함께 하고 싶어요.”
“담당 선생님께 말씀해도 되는 일이지 않나요?”
“제가 재중이와 한다는 것을 알리고 싶지 않아서입니다.”
“어째서죠?”
“일단 재중인 천재 바이올리니스트입니다. 전 일개 피아노 전공 학생일 뿐입니다. 시끄러울 거라 예상이 됩니다. 선생님들께서도 학생들에게서도. 그리고 제가 돈을 썼다는 소문이 돌게 하고 싶진 않습니다.”
“윤호.. 정윤호.. 아! 유노그룹. 미안해요. 잠시 잊고 있었어요. 어쩐지 익숙한 이름이였어.”


  원두커피를 두어번 마시고, 잔을 내려놓은 뒤 이사장님은 나와 재중을 보며 미소를 지어 주셨다. 진지하게 이야기를 듣던 표정은 어디로 사라지시고 여유롭게 말씀을 이어갔다. 재중인 이 상황이 그리 생소하지 않은지 오렌지 주스를 홀짝이며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오렌지 주스를 좋아하는 것 같다. 적어 놓기라도 해야 하나. 잠시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었더니, 이사장님이 자신의 말에 집중을 해 달라고 주의를 주었다. 재중의 앞에서 그랬다는 생각에 민망함과 동시에 얼굴이 살짝 붉어진 것 같았다. 내 모습에 재중이 해사하게 웃음 지어 주었다.


“그럼 재중이 파트너가 윤호인 것을 제가 가려드릴게요. 단 두 사람은 연주회 날 절 실망 시켜선 안 됩니다.”
“정말 그렇게 해도 됩니까?!”
“진짜?! 정말?!”
“그래요. 실망시키지 않아야 해요. 만약 둘의 연주가 형편없다면. 둘 다 실기 점수를 최하로 받게 될 거에요. 잘 할 수 있나요?”
“그렇긴 한데... 그래도..”
“전 이사장이니까 가능해요. 제 말이 곧 이 학교의 법입니다.”
“아...”
“그럼 두 분 이야기도 끝난 것 같고, 얼른 수업에 들어가셔야죠? 지금 수업시간 아닙니까?”
“앗!! 네!”


  부리나케 인사를 하고 이사장 실을 빠져나왔다. 난생처음 학교에 돈을 들고 와서 이사장에게 비는 것이 아닌 경험을 해서 그런지 느낌이 이상했다. 헤실 웃으며 재중과 난 서로를 한번 쳐다보고는 손을 잡았다. 바이올린으로 인해 다져진 손이 느껴졌다. 그래도 부드러운 재중의 손에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그나저나 이사장님이 말 중간에 재중이의 부탁은 뭐든 들어 줄 수 있다고 한 것 같은데...


“이사장님이랑 무슨 사이야?”
“왜? 무슨 사이 일 것 같아?”
“아니.. 그냥.”
“왜 무슨 생각 한 거야?! 내가 뭐 이사장님께 몸을 준다거나 이런 거?”
“아니... 그러니까... 학교 소문은...”
“아냐. 우리 삼촌이야.”
“에?!”

 

 


:사랑은 향기를 타고...

by 사쿠레이 | 2009/10/09 00:56 | └윤재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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